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리던 서울의 겨울이다. 아니 겨울의 서울인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례적인 추위는 맞았다. 달방 주인이 이러다 곧 송장 치르겠다며 어디서 뽁뽁이를 구해다 줬으니까. 한서준은 칼로 그것들을 죄다 자르고 대충 창문과 틈새에 겹겹이 붙였다. 이런 걸로 겨울이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냥 여름이면 선풍기를 키는 것처럼 계절...
아마도 우리의 영원은 그 시절에 있는 것 같다. 내 동생, 영주가 가진 아름다움의 기저에는 결핍이 있었다. 그건 나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영주는 누구보다도 애정에 죽고 사랑에 사는 애였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그 무형의 것에 목숨을 거는 애란 건 가족인 나만 아는 신화였다. 우리의 옛적 고향은 보육원이었다. 거기서부터 우리가 가진 낭만이 시작됐다. 너...
스모토성의 시종들은 최근 쓸데없는 미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 때 날리는 꽃잎 100개를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것이 그 미신이었다. 처음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던 이 미신이자 놀이는 어느새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다 퍼져버려 시종들은 쉬는 시간이면 나무 밑에서 기웃기웃거렸다. 한가풀 부는 바람에 일렁이는 꽃잎들이 그만 나뭇가지에...
정구 곁에 있다 보면 자꾸 기침이 나왔다. 나름 숨겨본다고 몰래, 그리고 작게 콜록거렸지만 입에서 느껴지는 피 맛은 숨겨지지 않았다. 적응되지 않는 그 맛에 미간을 찌푸리자 정구는 내 볼을 눌러 강제로 입을 벌리게 했다. 누구한테 맞은 것처럼 입 안 가득 고여있는 피에 정구는 욕을 했다. "나 하나도 안 아파 정구야" "구라치지마" 싱크대로 가 피를 뱉고 ...
남매는 사람을 죽였다. 피해자는 그들의 부모였다. 이곳에서 경찰의 눈을 따돌리기 제일 쉬운 장소는 당연 구룡성채였으므로 엉엉 우는 동생의 손을 잡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무구지옥 "정구야 오늘도 늦어?" 정구는 일이 많았다. 구룡성채를 잡고 있는 자경단이자 조폭 조직인 화이란에 들어가고부터 아침과 새벽에만 정구를 볼 수 있었다. 그곳은 쓸모있는 사람만을 취급...
아빠는 한국인이면서 야쿠자가 되길 원했다. 일본인을 오야붕으로 두고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으면서도 그곳에 눌어붙길 원했다. 피가 다른 우리는 절대 그들과 가족이 될 수 없을 텐데도. 아빠는 그들과 같은 피를 공유하길 원했다. 아빠는 야쿠자 생활 꼭 18년 만에 오야붕의 돈을 들고 날랐다. 사면이 바다인 이곳에서 도망칠 곳이 있을 거라고 믿었던 걸까? 멀...
아비없이 아이를 키울 순 없다. 다른 아이들의 가훈이 '착하게 살자' '선의의 거짓말도 거짓말이다' 따위일 때 보름의 어미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었다. 아무리 남자가 개새끼여도 절대 아비 없이 아이를 키울 순 없다고. 어쩌면 자신의 불우한 삶을 제 새끼한테 답습시키지 않으려는 엄마의 기도이자 저주이자 세뇌일지도 몰랐다. 보름의 아비는 역마살이 제대로 낀 사...
도노의 방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분을 볼 때면 마지막 남은 잎새가 생각났다. 조용히 있다가 금방 떨어질 잎새처럼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그 분이 자리하고 있는 공간은 도노의 옆자리 그 작은 곁 뿐이었지만 실질적으로 도노의 온 마음의 주인이란 걸 성안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도노께서는 그 분을 바람 불면 져버릴 꽃으로 생각하셨다. 유행이라는 장신구, ...
사람을 죽였다. 칼질 한 번에.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원래는 알아선 안됐을 것들을 알아버렸다. 쨍그랑-. 손에서 칼이 떨어졌다. 그제서야 영주는 부들부들 떨리는 제 손이 보였다. 그것은 두려움인가. 해방감에서 나온 기쁨인가. 아득해지는 정신 사이로 어쩌면 다시는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주의 재난에 대해...
아와지는 부정할 수 없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처음 보는 꽃들과 덥지 않은 바람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지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곳에 있는 나의 마음은 줄곧 지옥 같았다. 조선을 떠나 이국의 낯선 곳에 와있기 때문이요, 언제나 와키자카의 새장 안에 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밤이면 달이 환히 뜨는 절경을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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